텍스트 — 어떻게 읽나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다섯 권은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계열의 글이 뒤늦게 하나로 합쳐진 묶음으로 봅니다.
지금 학계가 쓰는 기본 틀은 제사장 계열(P)과 비제사장 계열(비P)입니다. P는 족보와 연대, 제사 규정, 정결법처럼 질서를 세우는 글이고, 비P는 이야기에 더 가깝습니다. 창세기에 창조 이야기가 두 개 있고 홍수 이야기가 겹쳐 흐르는 것도 두 계열이 지워지지 않고 나란히 남았기 때문입니다.
두 계열은 바빌론 포로기(기원전 586~538)에 각각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성전이 무너져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자 글이 그 자리를 대신한 시기입니다. P가 성전 없이도 지킬 수 있는 규례 — 안식일과 정결 — 로 정체성을 다시 세운 것도 이 사정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기(538~332)에 돌아온 엘리트들이 제국의 인가를 얻으려 두 흐름을 하나의 '토라'로 합쳤다고 봅니다. 오경이 지금 모습이 된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언제, 어떻게'에서는 갈립니다. 데이비드 카는 페르시아기 결합을 말하면서도 큰 덩어리 둘까지만 재구성할 수 있고 그 이상은 겸손해야 한다고 선을 긋습니다. 콘라트 슈미트는 족장 이야기와 출애굽 이야기가 원래 별개 전승이었다고 보아 더 정밀하게 추적합니다. 라인하르트 크라츠는 구절을 이어 붙여 신명기 이전의 육경을 재구성하려 하고, 카는 "읽히게 이어진다는 것이 독립 문서의 증거는 못 된다"며 반대합니다. 토마스 뢰머는 최종 형태를 페르시아 제국의 정황에서 설명합니다.
합친 뒤에도 손질은 이어집니다. 레위기 17~26장의 성결층(H)을 두고 벨하우젠은 H가 먼저고 P가 흡수했다고 보았지만, 크노흘과 밀그롬은 순서를 뒤집어 P가 먼저고 H가 그것을 편집·확장했다고 봅니다. 니한은 아예 H를 두 계열을 결합한 편집자, 오경 형성의 마지막 손길로 읽습니다. 옆에 놓인 신명기사가 역사도 층이 몇 개인지를 두고 뢰머는 세 층, 카는 두세 단계까지만으로 갈립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JEDP는 여기서 한 세대 앞의 학설입니다. 19세기 말 벨하우젠은 야휘스트(J)·엘로히스트(E)·신명기(D)·제사장문서(P) 네 자료가 순서대로 쌓였다고 정리했고, 이 도식이 백 년 넘게 교과서였습니다. 20세기 후반 유럽에서 그것이 흔들립니다. 렌토르프와 블룸이 J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한 편의 문서로 볼 근거를 의심했고, 족장과 출애굽이 따로 놀던 전승이라는 관찰이 더해지면서 J는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E는 그보다 먼저 힘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남은 것이 P와 비P라는 두 덩어리입니다. 다만 북미에는 네 자료 틀을 문학적으로 다시 세우는 흐름도 있어서, JEDP가 폐기됐다기보다 유럽과 북미가 다른 길을 갔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마지막으로 붙여 둘 단서가 있습니다. P와 비P라는 구분은 본문에 이름표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체와 어휘와 중복을 근거로 학자들이 되짚어 세운 재구성 가설입니다. 어디까지가 P인지도 완전히 합의되어 있지 않습니다. 확정된 지도를 손에 쥐는 일이 아니라 갈라지는 추론들을 나란히 놓고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토마스 뢰머 — 오경과 신명기 역사의 형성을 페르시아기 정황에서 읽습니다. 콜레주드프랑스 강의가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콘라트 슈미트 — 족장 이야기와 출애굽 이야기가 원래 별개였다는 논증으로 J 해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데이비드 M. 카 — 어디까지 재구성할 수 있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함께 따집니다. 방법론의 한계를 말하는 대목이 특히 읽을 만합니다.
조엘 베이든 — 반대편에서 네 자료 문서가설을 문학적으로 다시 변호합니다. 유럽 쪽과 함께 읽으면 쟁점이 분명해집니다.
오경형성은 성서를 여러 층으로 읽는다는 말이 실제로 무엇인지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창세기의 두 창조 이야기가 왜 겹치는지 설명되고 나면 문자주의 하나로만 읽기는 어려워지고, 역사비평이 무슨 작업인지도 손에 잡힙니다. 율법의 규정들이 어느 계열에서 왔는지 보이기 시작하며, 다섯 권을 언제 누가 묶었는가 하는 물음은 정경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 글들은 계속 고쳐 씁니다. 읽고 걸리는 데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