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만져야 보인다
22그들이 벳새다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데려와 만져달라고 청했습니다.
23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의 눈에 침을 바르고 손을 얹으신 뒤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24그가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25예수님께서 다시 그의 눈에 손을 얹으셨습니다. 그가 똑바로 보게 되었고, 회복되어 모든 것을 또렷하게 보았습니다.
26예수님께서 그를 집으로 보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마을에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27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 마을들로 가시다가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누구라고 합니까?"
28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29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누구라고 하십니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30예수님께서는 자기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셨습니다.
한 번에 낫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유일한 장면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나무처럼 보입니다. 두 번 만져야 또렷해집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베드로의 고백이 옵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몇 줄 뒤에 베드로는 예수를 붙잡고 말립니다.
마가는 두 이야기를 붙여 놓았습니다. 반쯤 보이는 눈과 반쯤 맞는 고백을.
이 책은 절반쯤 보이는 상태를 실패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자리로 둡니다.
본다는 건 뭘까?
한 번에 낫지 않았다는 것은 그때 어떻게 읽혔을까?
나는 지금 얼마나 보고 있을까?
여기 쓴 것은 서버로 보내지 않습니다. 만든 사람도 볼 수 없습니다.
표시한 문장이 여기 모입니다.
저는 또렷하게 보고 싶었습니다.
흐릿한 게 못 미더웠습니다.
나무처럼 보이는 채로도
한 걸음은 뗄 수 있다고 하시니
오늘은 이만큼만 보고 걸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