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도
되는 것들
묵상을 시작하기 전에 걸리는 물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묻기 어려웠던 것일 수도 있고, 오래 미뤄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 있는 답은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대답입니다. 다르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01마가복음은 언제, 어떻게 쓰였나요?▾
대체로 서기 70년 전후,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에 의해 무너진 직후에 쓰인 것으로 봅니다. 유대-로마 전쟁의 여파로 성전이 파괴되고 도시가 불타고 기근과 폭력이 뒤엉킨 시대였습니다. 유대 신앙의 중심이던 성전이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아닌가" 하는 물음 앞에 섰습니다.
마가복음은 그 무너짐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눈에 보이는 중심이 사라졌을 때 예수의 삶과 죽음을 다시 기억하게 하여, 새로운 자리에서 계속 걷도록 돕는 글이었습니다. 사건 기록이 아니라 재난 이후에도 살아가려는 공동체의 고백입니다.
02교리에 갇히지 않고 성경을 읽는 것은 위험하지 않나요?▾
교리와 전통은 신앙을 지키고 전해온 울타리입니다. 그러나 울타리가 너무 높아져 안에만 머무르게 되면, 성경이 가진 생명력은 약해집니다.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읽기가 곧 무질서는 아닙니다. 본질을 더 깊이 붙드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으로 읽되, 그 해석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03기적과 부활을 모두 사실로 믿어야 하나요?▾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 지표입니다. 다만 기적 전체가 신앙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건이 가리키는 방향과 의미를 자기 삶에서 내면화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기적 자체에만 매달리면 기복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성경 안에서도 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한 묘사는 서로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는 고백을 통해, 이 땅에서의 삶과 죽음 이후를 다시 헤아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 자체가 믿음의 길입니다.
04마가복음은 왜 부활 장면이 이렇게 짧나요?▾
마가복음의 원래 결말은 빈 무덤 소식에서 멈춥니다. 이미 여러 형태의 부활 신앙이 있던 때에, 한 가지만 못 박지 않고 열어둔 선택이었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 같은 재난을 겪은 공동체에게 이 열린 결말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증언하고 해석하라는 초대였습니다. 부활은 한 장면으로 완결되는 사건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묵상이 30일째에 16장 8절에서 멈추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05성경 뒤에 왜 다른 결말이 붙어 있나요?▾
여러분이 가진 성경에서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20절까지를 보면, 대개 괄호나 작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을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에는 이 부분이 없습니다. 쓰인 말투도 마가와 다릅니다. 2세기쯤에 누군가 덧붙인 것으로 봅니다. 8절에서 끝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겁니다.
한 가지 알아둘 것이 있습니다. 이 덧붙은 부분에는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습니다(16:18). 실제로 이 구절을 따르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삼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06왜 예수님이 존댓말을 쓰나요?▾
헬라어에는 한국어 같은 높임말 체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가 반말을 썼다는 것도, 존댓말을 썼다는 것도 원문에서 곧바로 나오는 결론이 아닙니다. 옮기는 사람이 정하는 일입니다.
저는 존댓말을 골랐습니다. 예수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아픈 사람, 여성, 아이,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을 낮춰 부르는 말투로 옮기면 그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워진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이유로 '나병환자'는 '피부병으로 격리되었던 사람'으로, '중풍병자'는 '몸이 마비된 사람'으로 옮겼습니다. 병명이 아니라 사람이 문장의 주어가 되도록.
07하나님 나라는 어떤 뜻인가요?▾
예수가 선포하고 살아 보인 새로운 질서입니다. 관계가 회복되고, 정의와 평화가 움직이고, 약자와 주변부가 중심에 서는 자리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오래된 정치적 언어를 다르게 풀어보려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원, 하나님의 공간, 하나님의 생명망처럼 서로를 살리고 돌보는 이미지로요. 먼 미래에 올 무엇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자라나는 삶의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08제자들은 왜 계속 실패하나요?▾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의 말을 자주 못 알아듣고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칩니다. 다른 복음서는 이런 대목을 줄이거나 뺐는데, 마가는 오히려 늘려 놓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사람들은 예수를 직접 본 적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장면들은 이렇게 읽혔을 겁니다. 곁에 있던 사람들도 못 알아들었구나.
실패는 믿음을 끝내는 사건이 아닙니다. 다시 돌아올 자리를 만듭니다.
09천국과 지옥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죽은 뒤의 장소로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드러나는 상태를, 지옥은 사랑과 정의가 사라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둘 다 지금 여기서도 경험됩니다.
심판은 겁주는 도구가 아니라 불의를 바로잡고 억눌린 이를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심판의 기준은 약자를 어떻게 대했는가에 있습니다. 굶주린 이를 먹이고, 나그네를 맞아들이고, 헐벗은 이를 입히고, 아픈 이와 갇힌 이를 돌보는 것.
10성경을 공부하는 것과 묵상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공부는 역사적 배경과 언어와 문학 구조를 살펴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합니다. 묵상은 그 말씀을 오늘의 삶에서 듣고 나에게 건네지는 말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하나만 하면 균형이 무너집니다. 공부만 하면 지식으로 머물고, 묵상만 하면 막연해지기 쉽습니다.
이 묵상은 읽고 느끼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더 깊이 파고들고 싶으시면 신학 브리핑을, 원어가 궁금하시면 원어분석을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
11묵상이 뭔가요? 기도를 잘 못 하겠는데요.▾
묵상은 특별한 기술이 아닙니다. 짧은 글을 읽고, 잠깐 멈추고, 뭐가 걸리는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하루 10분이면 됩니다.
기도가 어색하다면 안 하셔도 됩니다. 이 묵상집의 기도문은 읽어도 되고 건너뛰어도 됩니다. 마음에 걸리는 문장 하나에 밑줄을 긋는 것으로 충분한 날도 있습니다.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은 비워두셔도 됩니다. 30일 중 며칠을 건너뛰어도 괜찮습니다. 이 책은 여러분을 채점하지 않습니다.
더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신학 브리핑에서 학계의 논의를 보실 수 있습니다.
본문은 SBL 헬라어 신약성서(CC BY 4.0)를 저본으로 직접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