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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영혼만의 일로 볼지 몸을 포함하는 일로 볼지를 놓고, 왜 몸 쪽을 권하는지 밝힌다.
- 부활에 관심이 없는 신자, 몸과 분리된 영의 체험으로 보는 쪽, 물질성을 포함하는 몸의 부활로 보는 쪽 셋을 먼저 갈라 놓고 모두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 고대에 영으로 옮겨진 낱말이 물질과 정신을 함께 가진 개념이었다는 점, 그리고 1세기 유대 세계의 종말 이해가 이 물리 세계의 회복을 말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 마지막으로 의식을 물리적 기반 위에 생기는 현상으로 보는 오늘의 과학과 몸의 부활이 오히려 잘 맞물린다고 정리한다.
논점
- 몸과 분리된 영혼이라는 그림이 1세기 유대 땅의 주류였는지에서 갈린다. 그것은 그리스 철학 쪽 사고이고 성서를 쓴 공동체의 세계관은 몸의 부활 쪽일 확률이 높다고 본다.
- 환시 체험을 인정하더라도 그 사람의 고백은 몸의 부활로 갔다고 읽는다. 처음에는 환시였는데 나중에 사람들을 모으려고 몸의 부활로 바꿨다는 설명은 짧은 수십 년 안에 그 모든 것이 만들어졌어야 한다는 숙제를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제자들이 애도 때문에 환상을 보았다는 설명과 신이 환시를 주었다는 설명은 한 끗 차이라고 짚는다. 앞의 것은 종교가 성립하지 않는 자리로 간다고 본다.
- 물리성을 빼면 잃는 것이 있다고 본다. 생태와 정치와 먹고사는 문제로 이어지는 동력이 이 세계의 회복이라는 그림에서 나오는데, 극단적 이원론은 그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다.
- 신과 하나가 되어 흩어진다는 그림은 자아가 사라지는 것에 가깝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고유성이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라고 정리한다.
누가 보면 좋은가 부활을 믿는다고 할 때 정확히 무엇을 믿는 것인지 정리하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