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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신을 두고 한 물리학자와 한 신학자가 부딪힌 지점을, 하버드에서 공개된 논문을 옮겨 따라간다.
-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온 신학자가 하버드에 자리 잡던 무렵의 만찬 자리와 그때 오간 물음들을 소개한다.
- 존재 자체이자 모든 인격의 근거로 신을 놓는 그 신학자의 표현과, 그것을 초인격이라 부른 물리학자의 반응을 나란히 둔다.
- 두 사람이 카를 만한 공통점과 갈라진 지점을 정리하고, 그 논쟁이 오늘도 유효한 이유로 맺는다.
논점
- 신을 사람처럼 그리는 태도를 물리학자 쪽이 낡은 교리로 보고 버리라고 촉구한 데 대해, 그 지적 자체에는 온전히 동의한다고 말한다.
- 다만 종교의 자리에서는 신을 인격으로 상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학자 쪽의 반론이라고 짚는다. 사람을 고치는 것은 사람뿐이라는 말이 그 근거로 인용된다.
- 그래서 인격이라는 말은 두 방향으로 함께 써야 한다고 정리한다. 신을 가깝게 만나는 데 가장 적합한 언어이면서, 거기서 멈추면 신을 축소하는 불경이 된다는 것이다.
- 상징이라는 말이 신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지 않도록 못박는다. 사람이 신을 언어에 담으려면 상징을 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는 설명이다.
- 우주의 법칙 하나하나에 신의 의지를 따로 붙이는 이해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그 시대의 정치와 겹쳐 본다. 두려움에 기댄 종교가 학살을 응원하는 자리까지 갔다는 것이다.
누가 보면 좋은가 과학 하는 사람에게 신을 어떻게 설명할지 막막한 사람.
- 연도 2024
- 길이 42분
- 트랙 T3 지금 여기서
- 배정 사유 재생목록 「조직신학·신학과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