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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어떤 목적이나 방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두고 오간 물리학자와 무신론 신학자의 토론을 함께 읽는다.
- 한쪽은 우주의 진화와 미시 세계의 정교함을 볼 때 인격신은 아니되 어떤 지향점이 있는 듯하다며 그것을 X라는 기호로 부른다.
- 다른 쪽은 신학을 공부한 무신론자의 자리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을 신으로 메우는 방식에 반대한다.
- 양자 얽힘과 관찰의 문제 같은 대목이 어디까지 합의된 것이고 어디부터가 논쟁 중인지를 갈라 놓는 데까지 이어진다.
논점
- X라는 기호를 쓰는 이유가 고전적 유신론의 그림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읽는다. 기독교 쪽에서 인격에 갇히지 않은 신 개념과는 어느 정도 호환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 틈새를 메우는 신 개념에 대한 반대가 이 토론의 축이다. 모르는 부분을 근거로 삼으면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 우주가 인간을 향해 달려왔다는 식의 설명은 인간 중심적이라는 비판도 함께 놓인다. 다만 수학적 아름다움에서 어떤 제작자를 떠올리는 감각은 과학자들 사이에도 있다고 덧붙인다.
- 비전문가에게 필요한 것은 분류라고 정리한다. 과학에서 합의 수준이 높은 것, 팽팽하게 논쟁 중인 것, 애초에 다루기 어려운 것을 갈라 두어야 신학적 상상과 어긋나지 않게 이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다중 우주 같은 설명도 거의 종교에 가까운 상상일 수 있다고 본다. 확률을 무한으로 늘려 문제를 푸는 방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가 보면 좋은가 과학 이야기를 신앙과 이어 보고 싶은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헷갈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