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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 이후의 신을 다룬 책의 마지막 장들을 읽으며 신이 있느냐는 물음과 기도와 무신론이라는 말을 다시 정리한다.
-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존재로 신을 규정해 온 오래된 틀과 달리, 신이 세계와 얽혀 함께 변해 간다고 보는 흐름을 소개한다.
- 신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묻는 사람의 불안과 바람이 겹쳐 있다는 데서 신학이 곧 인간학이라는 말이 나오고, 교리로 규정하기보다 믿는 이들의 실천이 신을 어떤 존재로 드러내는가로 초점을 옮긴다.
- 기도하면서도 신이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태도를 다루며, 신의 죽음이라는 말이 무엇을 겨눈 말이었는지로 맺는다.
논점
- 고정된 완전함과 변해 가는 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신다운가를 묻는다. 경험과 만남을 통해 자라는 쪽이 오히려 신적일 수 있다는 제안이다.
- 신을 절대적이고 고정된 존재로 붙들려는 태도의 배경을 살핀다. 불안에서 오는 강박일 수도 있고, 그 존재를 대리해 공동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욕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실천으로 응답을 모으는 방식만으로 다 되지는 않는다고 균형을 잡는다. 교리로 규정하는 데만 힘을 쓴 쪽이 삶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놓쳤듯이, 반대쪽으로만 가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 교리를 믿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믿게 된다는 대목에 여지를 둔다. 이상한 교리도 몇 해 살다 보면 사랑하게 되니 그 순서가 애매하다는 지적도 함께 놓는다.
- 진짜 무신론자만이 기도할 수 있다는 문장을 소개하며, 신의 죽음이라는 말이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만든 억압과 교리에 신이 갇히지 않는다는 뜻이었음을 짚는다.
누가 보면 좋은가 신이 있느냐는 물음에 예도 아니오도 하기 어려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