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보기 →
예수를 온전한 신으로도 온전한 사람으로도 밀어붙이지 않는 자리에서 기독론을 다시 세운다.
- 예수를 신 100퍼센트로 보는 쪽과 사람 100퍼센트로 보는 쪽 사이에서 성서가 어떤 언어들을 썼는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과 메시아라는 말이 각각 어떤 전통에서 왔는지 짚는다.
- 4세기의 신앙 고백 문장 자체는 좋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다른 고백을 배격하는 권력으로 쓰인 역사가 있었다고 본다.
- 로고스와 영이라는 낱말의 고대 용법을 살펴 성육신을 다르게 이해하는 길을 제시하고, 마지막에 그것을 자기 돌봄과 공동체의 문제로 옮긴다.
논점
- 예수가 하늘에 있다가 내려왔다는 그림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고 본다. 그것도 하나의 상상이지만 초기의 다양한 고백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 성서 안에 두 방향의 언어가 섞여 있다는 점을 그대로 둔다. 하나님과 동등함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과 하나님이 그를 일으켰다는 대목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 교리에 질려 예수를 온전히 사람으로만 끌어내리는 흐름도 이해는 되지만 쉽지 않다고 본다. 그 자리에서는 종교가 성립하기 어렵고 성서의 독특한 표현들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대속을 피 흘려야만 죄가 풀리는 장치로 굳히는 방식을 거절한다. 예수가 가리킨 방향으로 돌아설 때 용서의 길이 열린다고 읽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 화해의 범위를 사람에서 만물로 넓혀 읽는다. 우주의 크기를 아는 오늘에는 그 스케일이 오히려 더 풍부한 종교적 상상이 된다는 것이다.
누가 보면 좋은가 예수가 누구인지를 교리 문장 말고 다른 말로 설명해 보고 싶은 사람.
- 연도 2024
- 길이 56분
- 트랙 T0 입구
- 이 편은 예수를 다시 말한다면
- 배정 사유 지정 — 입구